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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 - The Tide Is High 음악 이야기

Blondie - The Tide Is High


블론디 (Blondie) : 1974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

데보라 해리 (Deborah Harry, 보컬) : 1945년 7월 1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출생
크리스 스타인 (Chris Stein, 기타) : 1950년 1월 5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
프랭크 인판테 (Frank Infante, 기타) : 1951년 11월 15일 미국 뉴욕 출생
나이젤 해리슨 (Nigel Harrison, 베이스) : 1951년 4월 24일 영국 체셔 주 스톡포트(Stockport) 출생
지미 디스트리 (Jimmy Destri, 키보드) : 1954년 4월 13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
클레멘트 버크 (Clement Burke, 드럼) : 1955년 11월 24일 미국 뉴저지 베이온(Bayonne) 출생

갈래 : 뉴웨이브(New Wave), 댄스 록(Dance Rock), 펑크 록(Punk Rock),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blondie.net/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Bv_mQIZHeHs

미국의 뉴욕을 활동 기반으로 했던 뉴욕 펑크(New York Punk) 록 밴드 가운데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이자 1980년대 초,중반에 'Call Me'라는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뉴웨이브 밴드 '블론디'는 밴드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름다운 금발(Blondie)의 소유자인 '데보라 해리'와 그녀의 애인이었던 '크리스 스타인'을 주축으로 하여 1974년에 뉴욕에서 결성된 밴드이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출생한 데보라 해리는 생후 3개월만에 뉴저지(New Jersey)주 호손(Hawthorne)에서 작은 선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리차드 해리(Richard Smith Harry)'의 딸로 입양되었다. 호손에서 성장하여 1963년에 호손 고등학교(Hawthorne High School)를 졸업한 데보라 해리는 역시 호손에 있는 센티너리 대학교(Centenary College)에 입학하여 1965년에 졸업을 하게 된다. 대학교 졸업 후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뉴욕에 도착한 데보라 해리는 BBC 라디오의 뉴욕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을 시작하였다. 가수를 꿈꾸는 데보라 해리의 입장에서는 연예계에 대한 고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돈도 벌수 있는 일석이조의 일자리였던 셈이었다.

간접적이나마 연예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약 1년 정도 비서로 일했던 데보라 해리는 이후 나이트 클럽의 웨이트리스, 플레이 보이 클럽의 댄서, 던킨 도너츠의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1960년대 후반에 포크 록 밴드인 '윈드 인 더 윌로우스(The Wind in the Willows)'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윈드 인 더 윌로우스에서 활동했던 데보라 해리는 1970년에 3인조 걸 그룹인 '스틸레토스(The Stilettos )'로 옮겨 가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걸 그룹 스틸레토스는 백밴드와 함께 활동했었는데 당시 이 백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하고 있던 이가 바로 데보라 해리의 애인인 크리스 스타인이었다. 걸 그룹에서의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두 사람은 1973년 부터 새로운 밴드 결성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 교환을 나누기 시작하여 마침내 1974년에 스틸레토스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밴드인 '앤젤 앤 더 스네이크(Angel And The Snake)'를 출범시키게 된다.

앤젤 앤 더 스네이크는 1975년에 '클레멘트 버크'와 '지미 디스트리', 그리고 베이스 주자인 '게리 발렌타인(Gary Valentine)'을 가입시켜 5인조 구성으로 밴드 체제를 완성했으며 밴드 이름도 기억하기 쉽게 블론디라는 짧은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밴드 이름을 바꾼 블론디는 당시 뉴욕의 펑크 그룹들이 많이 출연하던 클럽인 CBGB(Country, Blue Grass, and Blues)에 고정 출연자로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부터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클럽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1976년에 프라이베트 스톡 음반사(Private Stock Records)와 음반 계약에도 성공한 블론디는 데뷔 싱글 'X-Offender'를 1976년 6월에 공개한 후 그해 12월에 대망의 데뷔 앨범인 'Blondie'를 발표하여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몰이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편 1977년 7월에 베이스를 담당했던 게리 발렌타인이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블론디에서 탈퇴하자 '프랭크 인판테'를 가입시킨 블론디는 곧이어 '나이젤 해리슨'을 가입시켜 밴드의 구성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이 즈음 소속 음반사와의 분쟁으로 프라이베트 스톡과 결별한 블론디는 1977년 10월에 크리살리스 음반사(Chrysalis Records)와 계약하게 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크리살리스와 계약을 하고 1978년 2월에 두번째 음반 'Plastic Letters'를 발표했던 블론디가 유명한 음반 제작자인 '마이크 채프만(Mike Chapman)'의 지휘를 받아 제작하고 1978년 12월에 발표했던 세번째 음반 'Parallel Lines'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와 영국 싱글 차트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한 히트 곡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블론디의 첫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이자 블론디를 정상의 밴드로 이끌어준 그 곡은 바로 'Heart of Glass'였다.

1980년에 '리차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출연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의 삽입 곡인 'Call Me'로 영, 미 양국의 싱글 차트에서 또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세계화에 성공한 블론디는 1980년 11월에 발표했던 다섯번째 음반 'Autoamerican'을 통해서 두 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배출함으로써 밴드 최고의 시기를 맞이 하게 된다.

이 음반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곡들은 'The Tide Is High'와 'Rapture'의 두 곡인데 특히 자메이카 그룹 '패라곤스(The Paragons)'가 1967년에 발표했던 스카(Ska: 자메이카의 대중 음악으로 초기의 레게 음악) 음악을 출렁이는 선율의 현대적인 레게(Reggae) 음악에 실어 편곡한 'The Tide Is High'는 미국과 영국의 싱글 차트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팝 팬들로 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었다.


덧글

  • 나는나 2012/08/28 11:28 # 삭제 답글

    이 앨범 자켓과 뮤비가 기억나네요.
    정말 흥겨운 곡이지요
  • 까만자전거 2012/08/28 15:36 #

    지금 들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선율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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