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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 Purple Rain 음악 이야기

Prince - Purple Rain



프린스 (Prince Rogers Nelson) : 1958년 6월 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출생

갈래 :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R&B), 팝 록(Pop/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discogs.com/artist/Prince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프린스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깨트리는 실험적인 음악과 선정성을 결합
하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93년에 접어 들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자신의 이름인 프린스 대신에 '예전에 프린스로 불렸던 아티스트(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는 이름
으로 개명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줄여서 'TAFKAP'라고 표기하였던 이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표시하는 기호를
조합해 만든 상징으로 표시하여 '심볼(Symbol)'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The Artist'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행동을 곧잘 보여주는 프린스는 자신의 음악에도 이런 점들을 고스란히 수용
하여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이자 섹스 심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존 루이스 넬슨(John Lewis Nelson)'과 재즈 가수였던 어머니 '마티 쇼(Mattie Shaw)'
사이에서 태어난 프린스는 열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살게 되자 어린 프린스는 이웃의 앤더슨(Anderson)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아들인 안드레 앤더슨(Andre Anderson)이 프린스 자신 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안드레 앤더슨은 '안드레 사이먼(Andre Cymone)'으로 알려진 미국의 베이스 주자이자 음반 제작자로 어린 시절
프린스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린스와 안드레 앤더슨은 '미니애폴리스 샌트럴 고등
학교(Minneapolis Central High School)' 재학 시절 프린스의 사촌인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와 함께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밴드 그랜드 센트럴은 프린스가 피아노와 기타를 담당했으며 안드레 앤더슨이 베이스를 그리고 찰스 스미스는 드럼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프린스의 어머니로 부터 연주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였고 파티 행사와 클럽들을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랜드 센트럴은 후일 '샴페인(Champagne)'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게 되는데 당시 밴드
가 추구하던 음악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등의 연주자들에게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1976년 프린스는 음반 제작자인 '크리스 문(Chris Moon)'의 미니애폴리스 녹음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이프를 제작
하고 음반 계약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음반 계약을 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을 느낀 크리스 문이 데모 테이프를 '오웬
허즈니(Owen Husney)'에게 판매하고 오웬 허즈니의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 도와 주었다. 열여덟살의 나이로
전속 계약을 한 프린스는 곧장 녹음실로 들어가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지(David Z)'의 지휘 아래 데모 테이프를 제작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 테이프는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를 비롯하여 A&M 과 컬럼비아(Columbia Records)에
보내져 음반 계약을 추진하였고 최종적으로 워너 브라더스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여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오웬
허즈니와 프린스는 데뷔 음반 녹음을 위해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소살리토(Sausalito)에 위치한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Record Plant Studios)'로 가서 1977년 10월 부터 12월 까지 음반 녹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1978년 4월 7일 발표된 프린스의 데뷔 음반 'For You'는 빌보드 앨범 차트 163위에 오르는 나쁘지 않은 성적과
함께 미국내에서 43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첫번째 싱글 'Soft and Wet'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Hot
100)에 2주간 머물며 92위 까지 올랐다. 1979년 1월 프린스는 안드레 사이먼과 함께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The
Revolution)'을 결성하여 순회 공연을 했으며 10월에는 두번째 음반 'Prince'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였고
소울 차트(Hot Soul Singles)에서는 1위를 차지하자 음반 역시 순항을 거듭하여 앨범 차트에서 22위 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음반 판매고 역시 백만장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이며 프린스를 새로운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1984년 프린스는 자신의 백밴드인 레볼루션과 함께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Prince and The Revolution)'의 이름으로
프린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음반인 'Purple Rain'을 발표하였다. 이 음반은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음반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 'Purple Rain'
마저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음반 'Purple Rain'은 'Let's Go Crazy'와 'When Doves Cry'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 놓았고, 음반 타이틀
트랙인 명곡 'Purple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까지 진출하면서 히트를 하였다.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Purple Rain'의 히트로 말미암아 프린스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
하였으며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되는 팬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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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는나 2010/05/18 17:32 # 삭제 답글

    프린스의 우리나라에서의 인기는 좀 많이 섭섭하겠죠.
    와우! 진짜 멋진 곡입니다.
  • 까만잠자리 2010/05/19 14:30 #

    음악 형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노래는 참 좋죠. ^^
  • Qmark 2010/05/19 00:50 # 답글

    Black Sweat로 프린스를 처음 알게됐는데
    2주전까지만 해도 이분 그렇게 유명한 인물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확실히 한국에선 취급이 심각하게 안습인 것 같네요 ㅡㅡ;
  • 까만잠자리 2010/05/19 14:33 #

    미국에서의 지명도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의외로 이 음반 이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게는 예외겠지만요.
  • 李家 2010/05/19 02:37 # 삭제 답글

    중간에 이름이 바뀐 것은 음반 계약문제가 얽혀서 바뀐 경우입니다.
    프린스는 음반 퀄리티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못 내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음반사에서는 만들다 만(?) 수준의 트랙으로 음반 발매를 강행...
    만들다 만 음반으로 빌보드 4~5위를 먹는 위업을 달성하죠...(물론 팬들에게 음반평은 좋지 않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나중에 계약 해지후 다른 이름을 사용했드랬죠...
  • 까만잠자리 2010/05/19 14:36 #

    심볼 음반을 발표하고 워너 브라더스와의 법적 분쟁이 발생했다고 대부분의 프린스 관련 웹에서
    적고 있는데 그 이유가 프린스 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를 워너 브라더스가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프린스의 공식 웹 페이지를 찾을 수 없어서 자세한 내막을 글에 적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 李家 2010/05/19 02:44 # 삭제 답글

    당시 전성기의 마이클 잭슨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팝 아티스트로 꼽혔지만
    물론 마이클도 좀 음란한 내용의 곡도 있었지만 뭔가 정의 수호자 같은 선한 이미지였다면
    프린스의 음악을 뜯어보면 완전 18금... 퍼플레인의 트랙 가사를 해석해보면 노골노골 그 자체입니다.
    덕분에 국내 라이센스 불가판정을 받아 한때 청계천 백판 최다판매 앨범의 전설로 불리었지요...
  • 까만잠자리 2010/05/19 14:38 #

    당시 한국에서 해적판이 참 많이 팔렸던 것으로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는 동성로의 한 음반점에서 해적판이 많이 유통되었었죠.
  • 피노 2010/05/19 20:03 # 답글

    저는 처음엔 그냥 댄스가수인줄로 알고 있다가 어떤 라이브 영상에서 기타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뻑갔죠...ㅋ
  • 까만잠자리 2010/05/20 14:09 #

    그러고 보니까 뉴 웨이브 음악 전문 가수로 오인받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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